이생각저생각/이런저런 이야기

치마속을 들추어보니

리챠드기우 2009. 6. 5. 14:04

아내가 옷가지를 몽땅 세탁기안에 담근채 잊고 있어서 오늘 아침에 출근하려니 내가 입을 셔츠가 없었다.

입을만한 셔츠가 있는지 오랜만에 옷장속에 손을 넣고 휘휘 저어보니..
 
잊어버렸던 옷감의 감촉이 내 손 끝에 닿는다.
 
내가 아내와 처음 사귈 때 없는 돈에 가불까지해서 큰 맘 먹고 사 준 유명메이커 원피스..

그 치마자락이 손에 닿으니 그 당시의 심정이 내 눈 앞에 빠른 영상필름처럼 펼쳐진다.

당시 백화점 매장 맨 앞에 진열되어 있던 그 파란색 원피스를 없는 주머니를 털고 회사에 가불까지해서 구입해서 선물로 주었었다.

그후 세월이 흘러 내가 가끔 그 원피스의 행방을 물으면 다 낡아서 버렸다고 하더니만..

옷장 속 깊숙히 비닐로 가려진 낡은 원피스의 치마가락이 손에 잡히고 보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치마속을 들추어보니 세월의 흔적이 구석구석 보이고..

결혼 전 몸에 꼭 맞던 원피스를 다시 입을 수 있을만큼 외소해진채 설겆이를 하는 아내의 뒷 모습을 보고 연애할때 부르던 이름으로 불러보니..

뒤로 고개를 돌리고 씨익 웃고선 계속 설겆이를 한다.

아내가 눈치채기 전에 낡은 원피스를 옷장구석에 다시 밀어 넣고선 태연하게 불평을 했다.

'뭐야.. 빨래감만 쌓아놓고.. 내가 입을 셔츠가 없잖아..'

아내는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씨익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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