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저생각/들어둘만한 것들

[스크랩] 청소부가 된 신부님

리챠드기우 2015. 10. 27. 10:23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지난 어느날 영동고속도로 ○○휴게소.

한 중년 부인이 승용차 창문을 반쯤 내리고
부근에서 빗자루 질 하는 미화원 ㅂ씨를 불렀다.

ㅂ씨는 부인이 부르는 '아저씨'가 자신이란 걸 뒤늦게 알고 고개를 돌렸다. 
이거(일회용 종이컵) 어디에 버려요?
" 이리 주세요."
그걸 몰라서 묻나. 쓰레기통까지 가기가 그렇게 귀찮은가…

ㅂ씨는 휴게소 미화원으로
일한 지 이 날로 꼭 한 달째다.
그런데도 아저씨란 호칭이 낯설다.
지난 27년 동안 신부님이란 소리만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이용해 휴게소 미화원으로 취직한 청소부가 된 ㅂ신부.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동안 휴게소
광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며 빗자루질을 한다.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주변에 한 명도 없다.
기자의 기습에 깜짝 놀란 그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일인데 하며
사람들 눈을 피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 사는 게 점점 힘들어 보여서 삶의 현장으로 나와 본 거예요.
난 신학교 출신이라 돈 벌어본 적도 없고, 세상 물정에도 어두워요.
신자들이 어떻게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장만하고, 교무금을 내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소위 빽을 경험했다.

농공단지에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갔는데 나이가 많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아는 사람이 힘을 써 줘서 겨우 휴게소 미화원 자리를 얻기는 했지만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란 걸 피부로 느꼈다.

그는 출근 첫날 빗자루를 내던지고 그만두려고 했다.
화장실 구역을 배정받았는데 허리 펴 볼 틈도 없이 바쁘고 힘이 들었다.
대소변 묻은 변기 닦아내고, 발자국 난 바닥 걸레질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오면 또 엉망이고….
그래도 일이 고달픈 건 견딜 만 했다.

사람들 멸시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했다.
무엇을 잘못 눌렀는지 커피가 걸쭉하게 나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
ㅂ신부는 휴게소 직원으로서 자신의 동전을 다시 넣고 제대로 된
커피를 뽑아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이
"고마워요. 저건(걸쭉한 커피) 아저씨 드시면 되겠네"라며 돌아서는 게 아닌가

."제가 그 때 청소복이 아니라 신사복 차림이었다면 그 여성이 어떤 인사를 했을까요?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죠."
ㅂ신부는 그러고 보면 지난 27년 동안 사제복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인사와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눈물 젖은(?) 호두과자도 먹어 보았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나왔는데 허기가 져서 도저히 빗자루 질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트럭 뒤에 쪼그려 앉아 몰래 먹었다.
손님들 앞에서 음식물 섭취와 흡연을 금지하는 근무규정 때문이다.

그의 한달 세전 월급은 120만원. 그는 "하루 12시간씩 청소하고 한 달에 120만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거냐, 적게 받는 거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또 "언젠가 신자가 사다 준 반팔 티셔츠에 10만원 넘는 가격표가 붙어 있던데… 라며 120만원의 가치를 따져보았다.

이번엔 기자가
"신부님이 평범한 50대 중반 가장이라면 그 월급으로 생활할 수 있겠어요?" 라고 물었다.
내 씀씀이에 맞추면 도저히 계산을 못하겠네요.
그 수입으로는 평범한 가장이 아니라 쪼들리는 가장밖에 안 될 것 같은데.
그는 "신자들은 그런데도 헌금에 교무금에 건축기금까지 낸다" 며
이제 신자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강론대 에서 '사랑'을 입버릇처럼 얘기했는데
청소부로 일 해보니까 휴지는 휴지통에, 꽁초는 재떨이에 버리는 게 사랑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누군가가 그걸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평범한 일입니다.
또 과시할 것도 없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죠. 시기 질투도 없습니다.
그게 참사랑입니다.

그는 신자들이 허리굽혀 하는 인사만 받던 신부가 온종일 사람들 앞에서
허리 굽혀 휴지를 주우려니까 여간 힘든 게 아니다며 웃었다.
그는 퇴근하면 배고파서 허겁지겁 저녁식사하고 곧바로 곯아 떨어진다"며
본당에 돌아가면 그처럼 피곤하게 한 주일을 보내고 주일미사에 온
신자들에게 평화와 휴식 같은 강론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날은 그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애초에 한 달 계획으로 들어왔다.
그는 낮은 자리에서의 한달 체험을 사치라고 말했다.
난 오늘 여기 그만 두면 안도의 한숨을 돌리겠죠.
하지만 이곳이 생계 터전인 진짜 미화원이라면 절망의 한숨을 쉴 것입니다.
다시 일자리를 잡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도 빽 써서 들어왔는데.
그리고 가족들 생계는 당장 어떡하고.
그래서 사치스러운 체험이라는 거예요.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 일터로 뛰어갔다.
한 시간 가량 자리를 비운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 같다.
미화반장한테 한소리 들었을지도 모른다. 쓸고 닦고 줍고…
몸을 깊숙이 숙인 채 고속도로 휴게소를 청소하는 ㅂ신부님.
그에게 빗자루 질은 사제생활 27년 동안 알게 모르게 젖어든 타성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때를 씻어내려는 기도인지도 모른다.

 

<염정애이사벨라 자매님이 카톡으로 보내 준 글을 퍼 옴>

출처 : 저절로
글쓴이 : 박은경 가타리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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